도시 재생과 제로웨이스트 폐건물의 두 번째 생명
도심 곳곳에는 기능을 잃은 폐건물들이 방치되어 있다. 한때는 상점이었고, 주택이었고, 공장이었던 건물들이지만 지금은 창문이 깨지고, 외벽이 무너져 내린 채 도시 속 그림자처럼 남아 있다. 이런 건물들은 종종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범죄 우려가 있는 공간으로 간주되며 철거 대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철거는 정말 유일한 해답인가?”
도시 재생은 단지 외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원과 공간을 재해석하고 재활용하는 과정이다. 특히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관점에서 보면 폐건물은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되살릴 수 있는 자원이다. 건축 자재, 구조물, 공간 자체가 모두 새로운 생명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폐건물을 제로웨이스트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도시 재생이 환경적, 사회적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버린 것을 되살리는 힘’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지금, 버려진 공간에 두 번째 생명을 불어넣을 시간이다.
폐건물은 쓰레기인가, 자원인가?
일반적으로 폐건물은 ‘도시의 흉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재사용 가능한 자재와 구조가 남아 있다. 철근, 콘크리트, 유리, 목재 등은 해체 후에도 새로운 건축물에 활용될 수 있으며, 구조적으로 안정된 골조는 전체를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재활용될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 철학은 단순히 일회용품이나 생활 쓰레기를 줄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무엇을 버릴지’보다 ‘무엇을 살릴 수 있을지’에 집중하는 태도다. 폐건물 또한 그 대상이 된다. 폐건물은 수십 년의 세월이 녹아든 문화적 흔적을 지닌 공간이며, 이를 살려 도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 된다.
해외 여러 도시들은 이미 오래된 건물을 활용해 제로웨이스트형 도시 재생을 실현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크라우츠베르크, 일본의 오모이데요코초,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 등은 철거 대신 리디자인을 선택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과거의 구조를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인 쓰임을 부여하여 공간의 순환을 이루었다.
폐건물은 결국 선택의 문제다. 쓰레기로 만들지 않고, 자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있다면 그 안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숨어 있다. 도시 재생이 단지 개발이 아니라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제로웨이스트 철학은 이 움직임에 깊이 녹아들 수 있다.
도시 재생 속 제로웨이스트의 실천 방식
도시 재생은 낡은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구조물을 짓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도시들이 ‘제로웨이스트 건축’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방식은 가능한 한 기존 구조를 유지하면서, 추가 자원 투입을 최소화하고, 해체되는 자재도 다른 용도로 순환시키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외벽 벽돌을 그대로 보존한 채 내부만 리모델링하거나, 기존 기둥과 보를 활용해 새로운 용도에 맞는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이 있다. 이렇게 되면 철거 비용이 줄어들 뿐 아니라, 건축 폐기물 자체가 현저히 감소하게 된다. 이는 탄소배출 절감에도 효과적이며, 도시 전체의 환경발자국을 줄이는 데도 큰 기여를 한다.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유휴 공간을 활용한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서울 성수동의 폐공장 리모델링 카페, 부산의 폐창고를 재활용한 문화예술 공간, 전주의 빈 가옥을 활용한 숙박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공간은 단지 ‘새로운 장소’가 아니라, ‘다시 쓰임을 얻은 공간’이라는 점에서 제로웨이스트적 의미를 가진다.
제로웨이스트 도시 재생은 단지 자원의 절약이 아니다. 이 방식은 지역 주민과의 협업,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 보존, 사회적 자립 기반 마련까지 포함하는 총체적 접근 방식이다. 지속가능한 도시란 단순히 깨끗하고 현대적인 공간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며 순환하는 공간이다.
폐건물의 두 번째 생명을 위한 사회적 조건
제로웨이스트 기반 도시 재생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회적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행정적인 규제가 유연해져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는 노후 건축물에 대해 철거 위주로 접근하고, 리모델링이나 재활용에 대한 인센티브가 부족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기존 자산 활용에 유리한 정책 지원과 세제 혜택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시민의 인식 변화도 매우 중요하다. 폐건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 그것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재사용 가능성에 대한 교육과 캠페인이 필요하다. 특히 젊은 세대가 ‘낡음’이 아닌 ‘스토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될 때, 도시 재생은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셋째, 건축과 디자인 전문가들이 제로웨이스트적 접근을 현실화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미관 개선을 넘어, 에너지 효율과 재료 순환까지 고려한 설계가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전문 인력 양성과 기술 개발, 공유 플랫폼의 도입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지역 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폐건물 재생은 단지 외부 개발자가 주도하는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 주민과 소상공인이 함께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지속성과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버려진 건물은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다음 장을 기다리는 이야기의 중간일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 도시 재생은 그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새로운 문장이다. 도시가 성장하는 방향은 더 높고 화려한 건축이 아니라, 더 오래 살아남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