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해외 사례 비교 분석
전 세계적으로 환경 위기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라는 개념은 단순한 시민운동을 넘어 국가 단위의 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제로웨이스트는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원의 순환을 확대하며 소비 구조를 재편하는 전방위적 접근이다.
많은 사람들은 제로웨이스트를 개인이 실천하는 작은 습관쯤으로 인식하지만, 실제로 가장 큰 변화는 국가와 도시의 구조적 개편을 통해 일어난다. 어떤 나라는 재활용률을 높이고, 어떤 나라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며, 어떤 나라는 아예 쓰레기 ‘생산 자체’를 제한하는 정책을 운영한다.
국가가 직접 개입해 제로웨이스트 정책을 시행할 경우, 시민들의 참여는 훨씬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개인의 선의에만 기댄 실천은 한계가 명확하며, 시스템 기반의 접근만이 대규모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제로웨이스트를 정책, 제도, 시민 참여도 측면에서 실질적으로 실행 중인 해외 사례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비교를 통해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개인의 양심이 아닌, 국가의 시스템이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뒷받침해야 할 때다.
가장 앞선 국가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유럽 최초의 제로웨이스트 수도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는 유럽 최초의 ‘제로웨이스트 도시’로 선언되었으며, 현재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류블랴나는 2014년, 쓰레기 제로 도시 계획을 공식 발표하면서 재활용률을 6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 수치는 유럽 평균인 약 45%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주목할 점은 시민들에게 단순히 ‘분리배출’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공공 인프라와 교육 시스템을 함께 개편했다는 점이다. 도심 곳곳에는 유료 쓰레기봉투 시스템과 RFID 칩이 부착된 분리수거함이 설치되어 있으며, 주민들은 배출량에 따라 요금을 부담한다. 이로 인해 쓰레기를 줄이려는 동기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또한, 류블랴나는 다회용품 대여소, 무포장 상점, 지역 커뮤니티 리필 스테이션 등 다양한 실생활 기반 제도를 통해 시민 실천을 일상화시켰다.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에서는 제로웨이스트 교육을 정규 프로그램에 포함시켜 어린 시절부터 환경 감수성을 키운다.
이처럼 류블랴나는 국가 정책과 시민 교육, 지역 사회의 참여가 삼박자를 이룬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쓰레기 없는 도시’는 구호가 아니라, 정책과 문화가 결합될 때 비로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델이다.
아시아의 모범 사례 일본 가미카쓰 마을: 마을 전체가 분리배출소
일본 도쿠시마현에 위치한 가미카쓰(上勝町)는 인구 약 1,500명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하지만 이곳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제로웨이스트 지역으로, 전국 최초로 ‘소각장 없는 마을’을 실현했다.
가미카쓰 마을의 제로웨이스트 실천 방식은 매우 철저하다. 주민들은 모든 쓰레기를 45가지 종류로 분리해서 직접 마을 분리배출소에 가져가야 한다. 자동화된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지만,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자원 순환의 의미와 책임을 체득하게 된다.
이 마을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다양한 보상을 마련했다. 예를 들어, 분리배출소는 단순한 쓰레기 처리장이 아니라, 중고물품 교환 공간, 환경 워크숍 장소, 지역 소통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주민들은 단지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원을 순환시키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행동하게 된다.
가미카쓰의 사례는 특히 ‘규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이 자발적으로 제로웨이스트를 실현한 것은, 주민 주도의 공동체 문화가 핵심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무리 작은 곳에서도 시민 참여와 공공 협력이 함께한다면, 쓰레기 없는 삶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다.
시스템이 만드는 변화, 한국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슬로베니아와 일본의 사례는 제로웨이스트가 정책과 시스템, 그리고 생활문화의 결합으로 작동할 때 가장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우리나라 역시 쓰레기 종량제,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 등 여러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실천이 ‘개인의 노력’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다.
한국의 분리배출 인프라는 잘 갖춰진 편이지만, 여전히 일회용 포장재가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무포장 시스템이나 다회용 대여소는 찾아보기 어렵다. 제로웨이스트 상점은 대부분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어, 지방이나 농촌에서는 접근 자체가 어렵다. 무엇보다 학교와 공공기관의 실천 모델 부재가 크게 아쉽다.
해외 사례와 가장 큰 차이는 정책의 의지와 실행의 깊이다. 류블랴나와 가미카쓰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시행한 것이 아니라, 시민과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변화를 설계했다. 단순한 분리배출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자원 순환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한국에서도 진정한 제로웨이스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캠페인이나 홍보에 그치지 않고 인프라 개선, 교육 확대, 지역 중심 모델 구축이 병행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제로웨이스트를 단기 유행이 아닌 장기적 사회 운영 원칙으로 정립하려는 정치적 의지도 요구된다.
제로웨이스트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시스템의 전환이 되어야 한다. 세계 각국이 보여주는 다양한 실천 방식은 우리에게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