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기업은 왜 포장재 없는 제품을 꺼릴까? 제로웨이스트와 기업의 책임

ooogj 2025. 7. 11. 22:40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친환경 포장이나 포장재 절감을 요구하는 소비자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규제, 탄소 배출 감축 정책 등 정부 주도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많은 기업들도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마케팅과 생산 전략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매장에 가보면, 여전히 대다수의 제품은 과도한 포장에 둘러싸여 있다. 소비자들은 왜 포장재 없는 제품을 찾기 힘든가? 그 이유는 단지 기술이나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구조와 유통 시스템, 브랜드 전략, 소비자 인식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환경에 대한 책임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 기업은 과연 소비자에게 어떤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에서는 기업이 포장재 없는 제품을 꺼리는 근본적인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제로웨이스트 시대에 기업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변화가 요구되는지를 네 개의 핵심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제로웨이스트와 기업의 책임

포장은 보호이자 광고다 기업 입장에서의 포장재 전략

 

기업은 포장재를 단순히 제품을 담는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포장은 제품을 보호하는 기능 외에도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하고 소비자 구매를 유도하는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다. 특히 유통 단계가 복잡하거나 보관 기간이 긴 제품일수록, 포장은 오염과 손상을 방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식품업계에서는 위생 문제가 직결되기 때문에 진공포장이나 다층 플라스틱 포장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대형 유통채널에서 제품이 진열될 때, 포장의 디자인과 부피는 시선을 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포장재를 없애는 것은 단순히 ‘비용 절감’이 아니라, 제품 자체의 생존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많은 기업이 포장재를 줄이는 대신 ‘재활용 가능’이나 ‘친환경 소재’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타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본질적으로 ‘제로웨이스트’보다는 ‘그린워싱’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게다가 포장을 줄일 경우, 경쟁 제품 사이에서 브랜드 구분력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기업 입장에선 크다.

 

제로웨이스트 무포장 제품은 유통 시스템과 충돌한다

기업이 무포장 제품을 꺼리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기존 유통 시스템과의 비호환성 때문이다. 현재의 유통 구조는 대량 생산–대량 포장–대량 배송–대량 진열이라는 고정된 프로세스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 시스템은 시간과 비용 효율을 최대화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지만, 포장재 없는 제품은 이 흐름에 쉽게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포장 없이 낱개로 유통되는 제품은 오염과 훼손 위험이 높고, 물류창고나 매장에서의 취급도 까다롭다. 특히 리필 시스템을 운영하려면 매장마다 리필 설비를 설치하고, 직원 교육과 위생 관리까지 병행해야 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기업에게 추가 비용과 관리 리스크를 의미한다. 또한, 현재 유통업체나 마트도 포장 단위 기준으로 재고를 관리하고 정산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무포장 제품은 단가 계산과 물류 자동화 시스템과 충돌을 일으킨다. 결국, 기업은 소비자의 요구와 실제 시스템 간의 괴리 속에서 ‘환경’보다는 ‘효율’을 우선하게 된다.

 

제로웨이스트 무포장 제품이 브랜드 전략에 미치는 영향

 

포장을 줄이거나 없앤다는 것은 브랜드에게 있어 ‘스토리텔링의 손실’을 의미할 수 있다. 포장 디자인은 제품의 콘셉트, 철학, 정체성을 전달하는 주요 수단이다. 특히 프리미엄 브랜드일수록 포장에 공을 들이며, 포장 자체가 ‘고급스러움’과 ‘브랜드 가치’를 상징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소비자는 종종 제품보다 포장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 따라서 포장을 제거하거나 단순화하면, 브랜드는 소비자와의 접점을 잃는다고 우려한다. 또한, 무포장 제품은 오히려 ‘싸 보인다’, ‘위생에 문제 있을 것 같다’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불러올 수 있으며, 이는 브랜드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결과적으로 브랜드는 포장재를 줄이기보다는, ‘친환경 포장’이라는 새로운 마케팅 요소를 삽입하는 쪽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아니라, 표면적인 친환경 전략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 역시 이러한 마케팅 메시지에 현혹되기 쉬워, 기업은 무포장을 감행할 인센티브를 가지지 못한다.

 

기업의 책임은 선택지 제공에서 시작된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의 책임을 소비자 개인에게만 지우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기업은 그 책임을 교묘히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소비가 확산되려면, 소비자가 아닌 기업이 먼저 구조적 선택지를 제공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포장재 없는 제품을 별도 라인으로 개발하거나, 리필 스테이션을 대형 마트에 설치하고, 다회용 용기를 구매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는 식이다. 단순히 ‘친환경 인증 마크’를 부착하는 수준이 아니라, 구매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구조적 시도가 필요하다. 일부 해외 기업은 리필 가능한 포장 시스템을 도입하고, 제품 회수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시도가 점차 늘고 있지만, 아직은 소규모 브랜드나 스타트업에 한정되어 있다. 대기업일수록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힘’이 크기 때문에, 그 책임도 크다. 제로웨이스트 시대의 기업은 단지 제품을 파는 주체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소비의 생태계를 설계하는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