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제로웨이스트가 오히려 낭비를 부를 때

ooogj 2025. 7. 18. 15:31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는 더 이상 소수의 급진적인 환경 운동이 아니다. 이제 이 개념은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자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정체성으로 기능하고 있다. 텀블러, 고체 샴푸, 천연 수세미, 대나무 칫솔 등 제로웨이스트를 위한 제품이 전시장처럼 진열된 매장이 생기고, SNS에는 ‘제로웨이스트 하울’과 ‘친환경 쇼핑 인증샷’이 넘쳐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낭비 없는 삶’을 외치는 이 운동이, 왜 때로는 소비를 자극하고 오히려 자원을 더 쓰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까? 본래 제로웨이스트란 "쓰레기 발생 자체를 최소화하는 삶의 방식"이지만, 현실에서는 그 취지가 왜곡되거나 오용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이 환경을 위해서라며 기존 제품을 버리고 새로운 ‘친환경 제품’을 구매한다.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지금 갖고 있는 물건이 ‘비친환경’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체하는 소비가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원 낭비, 탄소 배출, 비용 부담은 제로웨이스트가 지향했던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러한 흐름은 특히 SNS에서 가속화된다. '제로웨이스트 인증'이라는 명목 아래, 실천보다는 '보여주는 소비'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본질은 흐려지고, 새로운 트렌드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어떻게 낭비를 불러오는지를 네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 지속가능한 실천을 위한 올바른 방향성은 무엇인지 함께 고찰해보고자 한다.

 

환경을 위해 새로 산다는 모순 소비로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증명하려는 심리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본래 소비를 줄이고, 오래 쓰고, 되살리는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새로운 친환경 제품을 사는 행위’ 자체가 실천의 주요 수단처럼 자리 잡았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칫솔을 쓰고 있던 사람이 “환경을 위해 바꿔야겠다”며 대나무 칫솔을 산다. 여전히 멀쩡한 플라스틱 칫솔을 버리고 새로 산 대나무 칫솔이 과연 진짜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묻는 질문은 뒷전으로 밀린다. 많은 소비자는 나는 이걸 샀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사람이라는 상징성에 집중한다.

이런 심리는 소비자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 브랜드와 미디어가 만들어낸 구조적 유도에 가깝다. 제로웨이스트를 홍보하는 콘텐츠는 대체로 “이것만 바꾸면 환경을 지킬 수 있다”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결과 실천은 ‘기존 제품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닌 ‘새로운 친환경 제품을 사는 것’으로 전환된다.

대체상품이 만들어낸 새로운 수요는 ‘덜 소비’가 아닌 ‘다르게 소비하라’는 또 다른 시장 논리를 따른다. 소비는 멈추지 않고, 단지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바꿔 달았을 뿐이다.

이러한 행동은 사실상 ‘환경을 위한 소비’를 가장한 소비 중심적 라이프스타일이다. 실천의 기준이 행동의 변화가 아니라, 지갑을 열었는지의 여부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실질적인 자원 순환은 줄지 않고, 쓰레기의 종류만 달라진다.

 

친환경 DIY와 재활용 강박이 부른 에너지 낭비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일부 개인과 커뮤니티는 ‘만들기’를 중심에 둔다. 천연 수세미 만들기, 고체 세제 제조, 남은 천으로 장바구니 제작 등 다양한 DIY 실천은 환경 감수성을 키우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제로웨이스트 낭비

직접 만들기 위해 구매한 재료들이 오히려 원료 낭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실용성보다 ‘예쁘고 인증하기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소비로 변질되기도 한다. 실제로 고체 샴푸나 친환경 비누를 만들기 위해 소량의 원재료를 다품종으로 구매하고, 사용하지 못한 재료를 폐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또한 재활용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오히려 자원 효율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재질이 서로 다른 플라스틱을 일일이 분해하거나, 세척에 지나치게 많은 물과 세제를 사용하는 경우는 탄소발자국을 늘리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쓰레기를 줄이려다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셈이다.

무조건 ‘직접 해야 한다’는 강박, ‘모든 것을 재사용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태도는 실천의 지속 가능성보다 피로감과 낭비를 키울 위험이 크다. 환경은 단순한 도전이 아니라, 균형을 필요로 하는 시스템이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위한 새로운 구조없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비용

 

많은 이들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이유는 그 실천이 과도하게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쓰기 위해 매번 세척과 휴대의 번거로움을 감당해야 하고, 무포장 상품을 사기 위해 일부러 먼 리필숍을 찾아야 하며, 다회용기를 사용하면 오히려 할인 혜택 없이 불편만 늘어난다.

이처럼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의 실천은 결국 시간·노력·비용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책하거나 포기하고, “나는 못하겠어”라며 실천에서 멀어진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비용이 일방적으로 소비자에게만 요구된다는 점이다. 대형 프랜차이즈는 제로웨이스트 콘셉트로 마케팅을 하면서도, 다회용 컵 회수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거나, 친환경 포장을 이유로 가격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부담을 떠넘긴다.

실천이 지속되려면 개인의 양심이나 노력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실천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공공적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예컨대 보증금 컵 회수 시스템, 공공 리필 스테이션, 정책적 인센티브 등이 그것이다. 환경을 위한 선택이 고립된 노력이 되지 않으려면, 함께할 수 있는 구조적 연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