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되는 장소가 있다. 바로 대형 마트다. 나 역시 처음에는 무포장 제품을 찾기 위해 일부러 시장이나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찾았고, 대형 마트는 의도적으로 피하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현실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이 삶을 몇 년이나 지속할 수 있을까?”
도심에서 살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장을 한 번에 해결해야 할 때 대형 마트는 너무나도 효율적인 장소다. 문제는 그곳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제품이 과도한 포장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플라스틱 트레이, 개별 포장, 이중 랩핑, 무조건적인 증정 포장까지—마치 쓰레기를 함께 사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제로웨이스트와 대형 마트. 이 두 개념은 처음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진다. 하나는 소비를 줄이자는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대량 소비를 촉진하는 유통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대형 마트와 제로웨이스트는 공존할 수 있을까?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환경을 고려한 소비는 가능한가? 이 글에서는 현실적인 시선으로 이 질문을 풀어보고자 한다.
대형 마트의 구조와 제로웨이스트의 충돌
대형 마트는 본질적으로 대량 소비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다. 소비자가 한 번에 많은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재고 회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윤을 창출한다. 이 과정에서 제품은 보관성과 유통 효율성, 진열의 편의성을 고려해 대부분 플라스틱이나 포장재에 의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신선 식품 코너에서는 대량 낱개 진열보다 트레이+랩+스티커 포장 형태로 진열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매장 직원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위생 문제나 손상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다. 소비자 역시 “포장되어 있어야 더 신선하고 깨끗하다”는 심리적 신뢰를 느끼는 경향이 있다.
제로웨이스트는 이와 정반대의 방향을 지향한다. 필요한 만큼만, 포장 없이, 폐기물 없이 소비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제로웨이스트 소비는 시장, 리필샵, 무포장 매장에서 일어난다. 대형 마트와는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게다가 대형 마트는 제조사와의 계약 구조, 물류 단가, 보관 조건 등 복합적인 상업적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 포장을 줄이는 결정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근본적인 변화보다 부분적 실험으로만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구조가 다른 두 시스템은 완전히 대립적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최근 일부 대형 유통사들은 자체 친환경 브랜드를 론칭하거나, 리필 제품, 포장 간소화 제품을 별도로 진열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아직은 소규모이지만, 이 흐름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실제 대형 마트에서 일어난 제로웨이스트 사례들
실제로 한국의 일부 대형 마트들은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가능한 포인트들을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이마트는 ‘노라벨 생수’를 출시했고, 라벨지를 제거해 분리배출이 쉬운 디자인을 적용했다. 또한 소량의 플라스틱만 사용하는 ‘친환경 용기’로 포장된 반찬이나 도시락도 선보이고 있다.
롯데마트는 2020년부터 일부 지점에서 ‘플라스틱 없는 날’을 정하고, 비닐봉투 제공 중단 및 다회용 장바구니 장려 캠페인을 실시해왔다. 특히 과일, 채소 코너에서는 벌크 진열 상품에 대해 고객이 직접 용기를 들고 올 수 있도록 안내하기도 했다.
쿠팡이나 마켓컬리 같은 온라인 유통사도 최근에는 포장재 간소화 및 친환경 아이스팩 전환, 리사이클 가능한 냉장 박스를 실험적으로 도입 중이다. 이는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제로웨이스트 방식의 유통이 부분적으로 가능하다는 신호다.
더불어 몇몇 유통사는 매장 내 '친환경 존'을 따로 구성해, 소비자들이 포장재 최소화 상품을 쉽게 고를 수 있도록 배치 전략을 개선하고 있다. 이는 친환경 소비를 '고민 없이 고를 수 있게 만드는 UX'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아직 전체 제품군이나 매장 구조에 영향을 줄 만큼 크지는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형 마트 안에서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의 요구, 정책의 압박, 기업의 브랜딩 전략이 맞물릴 때 대형 유통 구조도 ‘부분적 전환’을 시작하게 된다
제로웨이스트 공존은 ‘완벽한 전환’이 아닌 ‘단계적 실험’에서 온다
대형 마트와 제로웨이스트가 완전히 일치하는 날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유통 구조, 소비 심리, 시스템 설계까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존을 위한 접점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완벽한 무포장 마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마트 안에서 하나의 선반, 하나의 제품, 하나의 소비 습관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소비자는 마트를 이용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실천이 가능하다.
– 장바구니와 다회용 용기를 챙기기
– 과대 포장이 덜한 제품 고르기
– 리필 가능한 상품 먼저 선택하기
– 무라벨/친환경 인증 제품 우선 소비하기
또한 소비자가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는 만큼, 기업과 유통업체 역시 변화를 고민하게 된다. 나는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반(半)불편함을 견디며 조금씩 구조를 흔드는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대형 마트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그 안에서 무엇을 사고 무엇을 거절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제로웨이스트 소비자로의 전환을 시작한 것이다. 완벽한 무포장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향한 작은 변화들이 공존의 가능성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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