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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일상은 고려됐을까 제로웨이스트의 접근성과 형평성제로웨이스트 2025. 7. 12. 10:44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는 지구를 위한 윤리적 실천이자, 지속가능한 삶을 지향하는 생활 철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다회용기 사용, 리필숍 방문, 포장 없는 상품 구매 등은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권장되고 있으며, SNS를 통해 ‘착한 소비’의 대표적인 사례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은 과연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가능할까? 특히 장애인 당사자의 일상과 삶의 조건 속에서 제로웨이스트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실제로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단지 의지나 환경 감수성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 물리적 접근성, 신체 조건, 인지적 편의성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 담론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글에서는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둘러싼 접근성과 형평성 문제를 장애인의 관점에서 조명하며, 지금의 환경 담론이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는 구조는 아닌지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한다.제로웨이스트 리필숍 무포장 매장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제로웨이스트 실천의 대표적 예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은 리필숍과 무포장 매장이다. 소비자는 다회용기를 가지고 직접 매장을 찾아가 물건을 리필하고, 포장 없는 식재료를 구입하면서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은 과연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열려 있는가? 실제로 상당수 리필숍은 계단이 있는 2층, 좁은 골목, 단차가 높은 입구 등 휠체어 사용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매장 내 진열 방식 역시 촘촘한 통로, 고르게 높지 않은 선반, 복잡한 표시 방식 등으로 인해 시각장애인이나 인지장애인이 이용하기에는 제약이 많다. 게다가 매장 직원이 장애 유형별 접근성을 고려해 응대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 이러한 현실은 ‘포장 없는 소비’가 가능한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실천이 가능한 사람만을 중심으로 시스템이 설계될 때, 그 외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제로웨이스트 담론에서 배제된다.
제로웨이스트 다회용기 사용 누구에게나 쉬운 일일까
다회용기는 제로웨이스트 실천에서 가장 상징적인 물품 중 하나다. 텀블러, 유리 용기, 천가방, 밀폐 용기 등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수단으로 널리 장려되고 있으며, 카페나 식당에서도 다회용기 사용 고객에게 할인을 제공하는 등 제도적인 장치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의 일상에서 다회용기는 단순한 친환경 도구가 아닌 물리적·인지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근육 약화나 손의 움직임에 제약이 있는 사람에게 무겁고 단단한 유리용기는 사용이 불편하고 위험할 수 있다.
뚜껑을 여닫는 과정이 어렵거나, 들고 다니는 동안 균형을 잡기 어려워 부상의 위험도 따른다. 또한 발달장애나 인지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다회용기 사용과 관련된 과정의 복잡성 자체가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대신 일회용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선택일 수 있음에도, 사회는 여전히 ‘일회용을 쓰는 사람’을 비윤리적인 소비자로 바라보곤 한다. 그 판단의 기준이 누구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제로웨이스트 담론에서 장애인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환경운동은 대체로 ‘모두를 위한 실천’을 강조하지만, 실제 커뮤니티와 캠페인에서는 장애인의 존재가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SNS 상의 제로웨이스트 콘텐츠를 보면, 대부분 건강하고 젊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브이로그에서는 자연광이 드는 주방에서 유리병에 정갈하게 물건을 담는 모습, 자전거로 리필숍을 오가는 장면 등이 등장하며, 이른바 ‘환경 감수성 높은 라이프스타일’이 이상적인 이미지로 그려진다. 문제는 이러한 이미지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현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장애인이 일상에서 선택할 수 있는 소비 방식은 환경적 가치보다 생존과 안전, 편의성을 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의식이 부족하다’, ‘노력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암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담론은 장애인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고, 더 나아가 ‘환경 실천에서 떨어진 사람’이라는 낙인을 형성하게 된다.
모두를 위한 제로웨이스트를 위한 전환은 가능한가?
진정한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단지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실천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는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이 환경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리필숍을 설계할 때 무장애 진입로와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진열대를 마련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 시스템, 발달장애인을 위한 직관적 픽토그램 안내가 더해진다면, 실제 이용률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기업 또한 친환경 제품을 개발할 때 경량화된 다회용기, 열기 쉬운 구조, 색상 대비가 강한 라벨링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단순히 개인의 윤리의식에 맡기지 않고, 사회 전체가 함께 실천 가능한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은 환경운동은 결국 소수자에게 또 다른 배제를 안기며,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제로웨이스트는 모두를 위한 운동이 되어야 하며, 장애인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실천은 결코 완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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