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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존이 먼저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어려운 사람들
    제로웨이스트 2025. 7. 14. 18:51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는 더 나은 지구를 만들기 위한 실천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품을 사용하며, 무포장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 방식은 개인의 윤리적 선택으로 추앙받고 있고, 다양한 캠페인과 미디어는 이러한 실천을 ‘의식 있는 삶’의 상징처럼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런 실천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모든 사람이 그런 실천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에 있는가?
    현실은 다르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시간적 여유, 경제적 자원, 정보 접근성, 물리적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을 필요로 한다. 생계가 불안정하거나 하루하루를 버티는 데 집중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제로웨이스트는 이상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다.
    이 글은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저소득층, 비정규 노동자, 주거 취약계층, 정보 소외자—의 현실을 조명하며, 지속가능한 환경 실천이 과연 모두에게 동등한 책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성찰해보고자 한다.

     

    제로웨이스트는 비용이 든다 친환경은 고급 소비일까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경제적 부담을 수반한다는 사실은 자주 간과된다. 예를 들어, 유기농 채소, 친환경 세제, 다회용기, 리필 제품 등은 일반 상품보다 가격이 높다. 3,000원짜리 플라스틱 세제를 사기 어려운 사람에게 8,000원짜리 리필 제품은 선택지조차 되지 못한다.
    저소득층은 단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소비의 선택지가 제한된 구조 속에 놓여 있다. 동네 마트에서 포장재 없는 상품을 판매하지 않거나, 유기농이나 리필 제품이 없는 경우, 가까운 곳에서 저렴한 것을 사는 것이 생존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게다가 소득이 낮을수록, 정기적 쇼핑보다는 그날그날 필요한 만큼 구매하는 패턴이 많기 때문에 대용량 리필이나 친환경 묶음 상품이 오히려 더 불편할 수 있다.
    친환경 소비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윤리적 선택일 수 있지만,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사치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런 구조에서 제로웨이스트는 모두를 위한 실천이라기보다는 특정 계층만을 위한 이상적 소비로 제한될 위험이 있다.

     

    시간 없는 사람은 실천할 수 없다 불안정 노동과 환경

     

    제로웨이스트는 시간과 계획이 필요한 실천이다. 장을 보기 전에 다회용기를 챙기고, 리필숍을 찾고, 무포장 식품을 따로 보관하고, 분리배출을 정리하는 과정은 삶에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이동 시간만 몇 시간이 걸리는 불안정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에게 이런 실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출퇴근 길에 장을 보고, 빠르게 끼니를 때우고, 하루 종일 서 있던 몸을 눕히기만도 벅찬 사람들이 ‘환경을 생각하며 소비하라’는 메시지를 들으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실천은 여유의 산물이다. 시간이 없고, 체력이 없고, 공간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지켜야 할 규범이 아니라 불필요한 자기 검열이 될 수 있다.
    이처럼 환경 실천이 일상의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책임으로 전가될 때, 그것은 오히려 환경 담론에 대한 피로와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어려운 사람

    주거 환경이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막는다 공간과 정보의 격차

     

    제로웨이스트는 물리적인 주거 환경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분리배출을 위해서는 충분한 수납공간, 환기와 통풍이 가능한 주방, 용기를 세척할 수 있는 설거지 공간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고시원, 반지하, 쪽방처럼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주거 형태에서는 이런 실천 자체가 어렵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부엌, 욕실과 방이 분리되지 않은 구조, 고장 난 수도나 하수 시스템은 환경 실천이 아닌 생존 그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비닐을 분리배출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물을 충분히 사용할 수 없어서 분리도 못 하고 그냥 버리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정보 접근성도 문제다. 제로웨이스트와 관련된 실천 정보는 대개 SNS, 유튜브, 블로그 등에서 유통되며, 스마트폰과 인터넷 환경이 안정적이지 않거나 디지털 활용 능력이 낮은 사람에게는 접근이 어렵다.
    이처럼 주거 환경과 정보 격차는 ‘실천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이 구조 속에서 환경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당사자에게 점점 더 멀게 느껴진다.

     

    제로웨이스트는 모두가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로웨이스트는 분명 필요한 운동이다. 그러나 이 실천이 특정 계층의 윤리적 우월감으로 작동하거나, 실천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면, 그 실천은 오히려 사회적 단절을 부추기게 된다.
    ‘왜 실천하지 않는가’를 묻기 전에, 먼저 ‘왜 실천할 수 없는가’를 물어야 한다. 정책 설계자와 환경운동가는 저소득층, 노동자, 주거 취약계층이 실천할 수 있는 방식부터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무상 다회용기 제공, 공공 리필 스테이션 설치, 저소득층 대상의 분리배출 교육 및 인센티브 제공, 저소득 가구에 적합한 친환경 제품 개발 등 실질적인 실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환경은 모두의 것이고,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가치이지만, 실천의 기회와 조건이 불균형하다면 그 환경 역시 결국 특정한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 되어버린다.
    생존이 우선인 사람들에게 제로웨이스트는 죄책감이 아닌, 함께할 수 있는 구조적 기회로 다가가야 한다. 그럴 때에만 환경운동은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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