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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와 한국 사회의 이중성 우리는 쓰레기를 숨긴다제로웨이스트 2025. 7. 16. 07:55
한국 사회는 표면적으로는 세계적인 환경 의식을 가진 국가 중 하나로 인식된다. 분리배출률은 높고, 제로웨이스트 운동에 대한 관심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으며, 정부는 일회용품 규제를 강화하고, 시민들은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삶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TV 프로그램과 SNS에서는 제로웨이스트 실천 사례가 미담처럼 소개되고, 브랜드들은 앞다투어 ‘친환경 포장’과 ‘지속가능한 제품’을 마케팅 수단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토록 겉으로 보기엔 ‘환경 선진국’에 가까운 한국 사회가 실제로 얼마나 쓰레기를 줄이고 있는지 묻는다면, 대답은 복잡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쓰레기, 통계에서 지워지는 폐기물, 그리고 실질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채 어디론가 ‘치워진’ 쓰레기 문제가 우리 일상 뒤편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 사회의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어떤 이중적인 구조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네 가지 관점에서 분석하고, ‘환경을 위하는 사회’라는 이미지 뒤에 감춰진 쓰레기 은폐의 문화적·정치적 기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눈앞에서 치우는 것으로 끝나는 청결 강박 사회
한국 사회는 겉보기에 깨끗하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거의 없고, 가정마다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철저히 분리하며, 아파트 단지에는 카메라가 달린 분리배출장이 운영된다. 그러나 이러한 ‘청결’은 실제로 쓰레기를 줄여서 생긴 결과가 아니라, 눈앞에서만 보이지 않게 치우는 방식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청소 노동’은 한국 사회에서 극도로 효율화되어 있으며, 대부분이 여성과 고령층, 외국인 노동자에게 맡겨져 있다. 이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건물과 거리, 학교, 병원, 관공서를 돌며 우리의 쓰레기를 대신 정리하고 숨기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쓰레기의 총량은 전혀 줄지 않으며, 단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깨끗한 거리와 건물을 보고 ‘우리는 청결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지만, 그 바닥에는 누군가의 노동이 쓰레기를 대신 떠안고 있다. 결국 한국의 청결은 쓰레기를 없애는 시스템이 아니라, 쓰레기를 숨기는 시스템에 가깝다.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사라진폐기물의 행방
공식 통계에서 한국의 재활용률은 80%에 육박한다. 이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치지만, 이 숫자는 분리배출된 양을 기준으로 한 통계일 뿐, 실제로 재활용된 양은 이보다 훨씬 낮다는 지적이 있다.
플라스틱, 비닐, 복합재질 포장재 등은 분리배출함에 버려지더라도 오염이나 혼합 재질 문제로 실제 재활용 공정에 투입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일부 재활용품은 수거 후 다시 일반 폐기물로 전환되어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게다가 한국은 상당량의 쓰레기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2018년 필리핀 쓰레기 수출 사태는 대표적인 예로,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 자원으로 위장해 수출했다가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재활용’이라는 이름 아래 수출, 소각, 매립으로 전환되는 쓰레기는 통계에서 쉽게 지워진다. 쓰레기의 실제 흐름을 추적하려면 단순히 수거량이 아니라, 처리 과정의 투명성과 사후 경로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 구조를 외면한 채, 높은 재활용률이라는 숫자를 통해 ‘환경적으로 올바른 국가’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제로웨이스트 실천은 개인의 책임인가 시스템의 부재인가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대부분 개인의 노력에 기반한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장바구니를 챙기고, 무포장 식품을 찾는 일은 고스란히 개인의 시간과 비용, 정보 접근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문제는 이런 구조에서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구조적 분석은 사라진다는 점이다.
가령, 서울 강남의 대형 리필숍과 지방 중소도시에는 접근성 자체가 다르고, 무포장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는 대부분 고가이다. 그러나 제로웨이스트 담론은 이런 지역적·계층적 조건을 무시하고 ‘모두가 실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요한다.
이는 시스템의 부재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방식이며, 정부와 기업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역할을 시민에게 떠넘기는 구조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쓰레기를 줄이자’는 구호 속에, 그 쓰레기를 생산하고 유통하며 확대하는 구조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제로웨이스트는 구조 변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아니라, 도덕적 실천을 강요하는 소비 트렌드로 축소되어버리는 이중성을 보인다.감춰진 쓰레기 문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의 미학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더러운 것’, ‘지저분한 것’을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는 데 익숙하다. 이는 쓰레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장애, 빈곤, 실직, 노후와 같은 사회적 문제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문화적 습관이기도 하다.
아파트 단지에서 쓰레기 분리배출장은 보통 지하 주차장 구석에 위치하며, 폐기물 수거 시간은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으로 설정된다. 음식물 쓰레기통은 뚜껑을 닫아 냄새를 차단하고, 길거리에는 청소 인력이 즉시 쓰레기를 수거한다.
이러한 방식은 쓰레기를 시야에서 지우는 것에 집중할 뿐, 그 쓰레기의 발생 원인이나 구조에 대한 반성은 담고 있지 않다. 우리가 보는 ‘깨끗한 공간’은 실제로는 쓰레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는 상태이다.
이처럼 쓰레기를 가리는 문화는 결국 제로웨이스트 운동의 방향을 흐리게 만든다. 제로웨이스트가 단지 ‘예쁘게 정리된 유리병’이나 ‘브이로그에 나오는 친환경 라이프스타일’로만 소비될 때, 쓰레기의 실체는 또다시 가려지고 만다. 진짜 변화는 쓰레기를 숨기는 방식이 아닌, 쓰레기를 드러내고 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제로웨이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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