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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생활과 제로웨이스트는 양립할 수 있을까제로웨이스트 2025. 7. 14. 08:48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은 개인의 삶을 환경적으로 전환하는 실천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일회용품을 줄이고, 다회용기를 사용하고, 포장 없는 제품을 선택하는 삶의 방식은 ‘지속가능성’이라는 이름 아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권장되고 있으며, 실천하는 개인들은 윤리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자립생활을 실천하는 장애인, 노인, 또는 도움 없이 일상을 꾸려나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제로웨이스트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혼자 살아가야 하는 조건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는 실천’은 곧 삶의 위험이나 생활 유지 불가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자립생활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제로웨이스트에 접근할 때 어떤 제약을 마주하는지, 그리고 환경 실천이라는 대의명제가 어떻게 생활 조건과 충돌하거나, 혹은 새로운 방향으로 조율될 수 있는지를 네 가지 관점에서 고찰해본다.자립생활의 전제 조건과 제로웨이스트 실천의 불일치
자립생활은 단지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산다는 의미를 넘어서, 스스로 일상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사회적 주체로 살아가는 구조를 말한다. 특히 장애인 자립생활은 이동, 식사, 위생, 정보 접근 등 전 영역에서 물리적·제도적 지원 없이도 일상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요구하는 생활 조건은 대부분 시간, 체력, 계획 능력, 공간 활용도 등에서 ‘추가적인 자원’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리필숍에서 샴푸나 세제를 구매하려면 다회용기를 챙겨야 하고, 혼자 용기를 들고 이동하거나 용량을 계산해서 담는 행위는 자립생활 당사자에게 물리적 부담을 줄 수 있다.
또한 무포장 식재료 구매는 대체로 대형마트가 아닌 시장이나 특정 매장을 찾아가야 하며, 이동이 제한적인 사람에게는 접근성이 현저히 낮다. 설령 구입을 하더라도, 별도로 보관하고 세척하는 과정 역시 일상 기능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과중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자립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에게 제로웨이스트는 실천이 아니라 현실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될 위험이 있으며, 실천 여부 자체보다 생활 안정성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전제된다.일회용품 사용은 편리함이 아니라 안전장치일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 운동에서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거나 거부하는 것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하지만 자립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일회용품은 단순한 편의의 도구가 아닌, 생활 유지와 위생 확보의 중요한 수단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손에 힘이 약한 사람은 유리 용기보다 가볍고 쉽게 여닫을 수 있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다회용기 사용이 반복되면 오히려 낙상이나 부상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또한 세척이 어려운 환경에서는 재사용보다는 위생적으로 안전한 일회용품이 더 적절한 선택일 수 있다.
요리를 하지 못하는 장애인은 포장된 반조리 식품이나 배달 음식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 모든 소비는 대부분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 포장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것은 환경을 해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기본적인 식사를 해결하기 위한 조건 속 선택이다.
환경적 가치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일상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조건에서는 윤리적 실천이 사치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자립생활 당사자가 환경 실천의 대상이 되려면, 먼저 생존과 독립을 보장받는 시스템적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환경 실천 담론에서 자립생활 주체가 지워지는 방식
대중 미디어나 SNS에서 공유되는 제로웨이스트 콘텐츠는 대부분 비장애인, 중산층,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깔끔한 주방, 유리병에 정리된 식재료, 텀블러를 들고 걷는 산책길은 ‘지속가능한 삶’의 상징으로 반복된다.
이 속에서 자립생활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실천을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의식이 낮다’, ‘지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비난이 담긴 콘텐츠도 많다. 이러한 담론은 실천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상 어려운 사람들까지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자립생활 주체는 스스로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책임을 지지만, 제로웨이스트 담론 안에서는 실천 불가능의 이유조차 고려되지 않는다. 환경 실천에서 누군가는 기본적으로 배제되어 있고, 그 배제가 마치 ‘무책임함’처럼 해석되는 구조는 환경운동의 윤리성을 오히려 해치는 요소가 된다.
모두가 실천하자는 구호는 좋지만, 모두에게 실천의 조건이 같은가에 대한 질문은 충분히 던져지지 않고 있다. 자립생활을 하는 사람이 ‘실천 불가능한 사람’이 아니라, ‘고려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사회가 인식하지 못하는 한, 제로웨이스트는 완성될 수 없다.자립과 제로웨이스트가 공존하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자립생활과 제로웨이스트는 반드시 충돌하는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이 두 가지가 적절한 제도와 제품 설계,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통해 공존 가능하다는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무거운 유리 대신 가볍고 미끄러지지 않는 다회용기, 한 손으로 열 수 있는 패키지, 세척이 간편한 식기 구조를 개발한다면, 자립생활 사용자도 친환경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배달음식에 사용하는 포장재를 생분해성 재질로 바꾸거나, 일정 수량의 포장 용기를 회수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기존의 편의성과 환경 가치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정책적으로는 자립생활센터나 복지기관에서 환경 교육을 제공할 때, 일률적인 실천을 강조하기보다 개인의 조건에 맞는 선택지를 다양화하고, 그 실천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립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환경 실천을 ‘부담’이 아닌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권리로 설계하는 것이다. 자립과 지속가능성은 모두 인간다운 삶을 위한 선택지이며, 사회가 그 중 어느 하나만을 강조해서는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제로웨이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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